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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one
[2017-10-15] 질문하지 않는 이유. 질문하지 못하는 이유. 본문
2017년 10월 15일의 E'jon,
질문하지 않는 이유. 질문하지 못하는 이유.
한창 중간고사 기간이다. 오랜만에 시험 대비 공부를 하는 것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찌 하다보니 하게 된다. 다행히 중간고사를 치는 수업이 적은 덕분에 이렇게 블로그에 글 쓸 시간도 있다. 물론 지금 이렇게 여유로운 만큼 기말고사때는 죽어나가겠지. 그건 뭐 나중 일이니까 넘어가고.
내가 다니는 학과는 학과 특성상 여러 학문을 동시에 다룬다. 넓고 얇은 지식을 다루는 셈이지. 정치, 법, 사회, 문화, 경제 등인데, 그 중 난 경제를 가장 좋아한다. 그 두껍다는 맨큐의 경제학 책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혼자서 정리했을 만큼 관심도 많았는데, 그래서 이번에도 평소의 선호를 따라서 '거시경제학'을 수강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중간고사 기간이니까, 시험 대비를 위해 거시경제학 문제를 풀고 있다. 그런데 문제를 다 틀린다. 틀리는 것은 넘어가더라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꽤 있다. 어떻게 푸는지 전혀 모르겠다. 수업을 그렇게 대강 들은것도 아니고, 필기도 다 했는데, 왜 못 푸는 것인지 나도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답지를 뒤져볼 수도 없는게, 이 책이 답지가 아예 없다. 그렇기 때문에 풀지 못하면 그걸로 끝. 틀려도 틀린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 교수님께 물어보면 되지. 맞는 말이다. 나도 지금 시험공부를 하니까, 교수님께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시험은 다음 주, 이 글을 쓰는 날로부터 4일 뒤고, 그 동안에는 수업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평소에 교수님께 질문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라고 해봐야 몇 주 전의 나이지만)에 약간 후회가 된다. 근데 왜 그때는 질문할 게 없었던 걸까?
떠올려보면, 질문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다. 그냥 수업을 듣기만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강 이해했겠거니 하면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험공부를 하며 내 머릿속의 지식을 다시한번 꺼내 들춰보니, 이해를 하기는 개뿔. 모르는 게 정말 많이 튀어나온다.
인터넷에 보면 지식의 수준에 따른 자신감이라고 하면서 그래프가 하나 나온다. 다른 티스토리 블로거이신 R Friend님의 'R,Pythen 분석과 프로그래밍' 블로그의 글 중, 이와 관련한 그래프를 소개하고 있다. (http://rfriend.tistory.com/105) 정말 좋은 글이라, 한번 가서 원문을 읽어보길 바란다. 상대적으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감이 높고, 많이 아는 사람일 수록 자신감이 잘 늘어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나의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바로 그 '스튜핏'한 부분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험공부를 하다보니, 모르는 것이 나오는 것이고,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감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질문'이라는 것을 하고싶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갑자기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질문'을 언제 하게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언제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질문'을 원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나중에 나도 교사가 되었을 때, 그런 문제에 휩싸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질문을 하게끔 만들 것인가. 그에 대한 고민을 한번 시작해본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을 토대로, 나는 언제 '질문'을 하고싶었나? 바로 수동적으로 강의를 들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공부해 가면서 모르는 것이 나왔을 때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식했을 때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식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아! 맞다! 소크라테스!
예전 2014년에, 그땐 파릇파릇한 새내기인 1학년에, 교육철학, 교육사를 배웠었는데 그때 배운 기억이 있다. 물론 당시 외모는 전혀 파릇파릇하지 않았지만.
- 소크라테스 : 대화법(문답법) 사용, 공동체 의식 중요시 → 교사-학생이 대화를 통해 합리적 진리에 함께 도달
+ 대화법(문답법) : 1. 반어법 : 학습자의 무의식적인 무지 → 의식적인 무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깨닫게 함”
2. 산파술 : 의식속의 무지에서 우주의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함
난 평소에 공부한 것을 컴퓨터에 문서로 저장하는 편이라서, 그때 배웠던 내용을 쉽게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법, 문답법이라고 하는 교수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위에 언급되어 있듯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로 반어법이다. 학습자의 무의식적인 무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학습자는 '모르는 사실조차 모르는'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알게 해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고, 모르는 것은 "넌 그것에 대해 모른다!" 라고만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그럼 이제 학습자의 머릿속에는 궁금한 것들로 가득차,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점은, '그래 난 모른다! 모르니까 안해! 때려쳐!' 라는 반응을 보이며 떨어져 나갈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보통 수포자가 나오는 이유가 이런거 아니겠나. 모르니까 손을 댈 수가 없고, 알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때려치워버리는 것이다. 그런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학습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지는 미래의 나에 대한 숙제로 남겨놓고. 오늘은 이걸로 종료!
적어보니, 당연한 소리를 지껄인 듯 하다. 이게 뭐라고 적어뒀냐고? 나는 정말 생각이란 것을 잘 하지 않고 사는, 생각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별 거 아닌 생각도 적어둬야 '내가 생각이란 것을 하긴 했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일기에나 적지 공개된 공간에는 왜 적냐고? 공개된 공간에 적어야 글을 제대로 쓸 것 아닌가! 나만 보자고 적으면 글 내용이 개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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